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충북 옥천(沃川)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옥천군 청산면(靑山面)의 만세시위는 3차에 걸쳐 일어났다. 1차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6일 수백명 군중이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벌인 뒤 해산하였다.
제2차 만세시위는 4월 2일 장날 하오 1시경부터 일어났다. 청산읍 인근 청서면,청남면, 보은군 마로면(馬老面),삼승면(三升面) 및 영동군 용산면(龍山面)에서 모여 온 장꾼들은 읍민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 행진을 하다가 새벽 1시경 해산하였다.
제3차 만세시위는 4월 4일 밤 8시경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 해산하였다. 이때 수천명의 군중이 시위를 전개하자, 일본 헌병주재소는 시위 군중들에게 사격을 가하여 5명이 순국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잡힌 이들은 주재소 마당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하였는데, 비명이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다.
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힌 김홍은 1919년 4월 29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89~90면
- 受刑人名簿(沃川郡 靑山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