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5월 경 러시아 정부에 의해 공산당 (共産黨) 선전위원 (宣傳委員) 자격으로 러시아 정부 및 극동 (極東) 지역 한인 사회주의자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르쿠츠크에 파견되어 한인대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소규모 군사조직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동년 옴스크에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사관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단체 혈성단 (血成團) (1922년 급진단 (急進團) )을 조직해 독립전쟁을 준비하였으며, 1923~1924년 독립운동자금 1만 루블을 확보하고,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 (沿海州) 조선인 (朝鮮人) 공산당원 (共産黨員) 책임자 (責任者) 연합대회 (聯合大會) (일명 고려공산당대회준비회 (高麗共産黨大會準備會) )에서 경제부 (經濟部) 위원 (委員) 으로 참석해 한인 사회주의세력 재건활동에 참여했으며, 1925년 경 블라디보스토크지역 공산당 (共産黨) 고려부원 (高麗部員) 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박군팔은 1920년 5월 러시아 정부 공산당 선전위원(宣傳委員) 자격으로 극동(極東)지역 한인사회주의자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르쿠츠크에 파견되었다. 이후 이르쿠츠크에 재류하는 한인 약 400여 명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회의 참석자 대부분이 공산주의에 찬성하였고, 동시에 한인 병사 80여 명을 선발하여 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더불어 독립운동 전개와 그에 필요한 자금도 조달하였다. 이후 러시아 옴스크지역에 사관학교(士官學校)를 설립하고 생도 80여 명을 모집, 개교하여 군사훈련과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이와 함께 박군팔은 군사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무장독립운동단체 혈성단(血成團)을 조직하여 이루크츠크에 본대(本隊)를 두고 시베리아 각지 요충지에 지대(支隊)를 배치하여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이후 1923~1924년 사이 독립운동자금 1만 루블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박군팔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옴스크지역에서 한인사회 연대와 무장투쟁준비에 노력하였고, 이후 러시아 한인사회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블라디보스토크 總領事 : 1920. 5.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9)
- 金東漢 送還에 關한 件(浦潮斯德 總領事代理 副領事 : 1925. 7.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5)
-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블라디보스토크 總領事 : 1920. 6.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0)
- 極東 露領에 있어서의 不逞鮮人의 狀況 報告의 件(滿洲里領事代理 : 1922. 9.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3)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국사편찬위원회) 제34권 151, 154~155면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국사편찬위원회) 제35권 175~184면
- 共産黨員의 取調狀況에 關한 件(鍾路警察署長 : 1924. 10. 20) 檢察行政事務에 關한 記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