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경성중앙방송국 제2방송부 보도과 현업주임(現業主任)으로서 아나운서로 근무하던 1942년,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 기술부 제1현업과(第一現業課)에서 기술원 박택청(朴澤淸) 및 제2방송부 방송원들과 함께 단파수신기(短波受信器)를 이용하여 미국의 단파방송을 청취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6월 말경 밤 9~10시 사이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태평양전쟁 전과(戰果) 발표에 대한 일본어 방송을 청취했는데, 그 내용은 일본의 군함이 많이 침몰했고 미국이 크게 승리하였다는 선전방송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5일 밤 9~10시 사이에 우리말 방송을 청취했는데, 그 내용은 샌프란시스코 솔로몬 방면의 해전에서 미군의 승리, 미군의 버마 진격, 독소전(獨蘇戰)에서 소련의 승리 등에 대한 선전방송이었으며, 또 “조선 동포를 간악한 일본의 정치에 기만당하게 하지 말고 조선독립운동을 하자”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러한 내용의 방송을 들은 이틀 뒤인 같은 달 27일경 송진근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이원구(李元九)에게 청취한 내용을 전달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942년 말부터 1943년 봄 사이에 동료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단파방송 사건’으로 인해 송진근뿐만 아니라 성기석(成基錫)·염준모(廉準模)·박용신(朴龍信) 등 경성방송국과 개성방송국(開城放送局) 관계자 다수와 송남헌(宋南憲)·홍익범(洪翼範)·허헌(許憲)·문석준(文錫俊) 등 150여 명의 인사가 함께 검속되었다. 1943년 7월 29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육군형법(陸軍刑法) 및 해군형법(海軍刑法)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4년 9월 17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방송사(韓國放送史)(한국방송공사, 1977) 30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정병준, 2009) 제56권 202면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7) 70권 41~42, 4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4권 878면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3.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