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남만주에 근거를 둔 의군부(義軍府)에 소속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의군부는 1919년 4월 만주 북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던 의병들이 3.1운동을 계기로 조직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이범윤 이외에 진학신(秦學新),최우익(崔友翼),김청풍(金淸風) 등이 주축이 되어 화룡현(和龍縣) 신봉동(新鳳洞) 명월구(明月溝)에 근거를 두었다. 간도 용정 국자가(局子街) 일대와 두만강 대안 각지의 일제 경찰과 한인 주구배들을 처단하는데 힘썼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연합하여 청산리대첩 중 어랑촌전투(漁郞村戰鬪)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유창렬은 1921년 의군부 소속의 독립군으로 활동하면서 남만(南滿)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1월에는 관전현(寬田縣) 양자구(楊子溝)에서 개최된 남주만통일회의에서 남만통일회(南滿統一會) 후원대(後援隊) 선전위원에 선출되었다. 1924년 2월 서간도 관서지방회의 제2회 정기총회에서 교육위원에 선임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第二次 不逞鮮人 搜索 狀況顚末, (機密受제199호-關機高收제4651호-1, 1922. 4.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
- 독립신문(1924. 3. 29)
- 不逞團 統一宣傳에 관한 건(機密受제27호-機密公제23호, 1922. 4. 1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