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8년 9월 1일 장주문은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楊甘面)에서 창립된 양감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됐다. 1929년 10월 양감면 용소리에 야학원(夜學院)이 설치됐을 때에는 이곳의 교사를 맡았다.
1930년 3월 8일에는 수원청년동맹의 순회위원에 선임됐다. 1930년 4월 27일에 개최된 신간회 수원지회 임시대회에서는 신임집행위원을 맡았다. 같은 해 6월 23일에는 수원청년동맹의 집행위원에 선임됐고, 조직부장에 배정됐다.
장주문은 수원청년동맹 양감지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중 1930년 10월 24일 ‘수원격문사건’과 관계되었다는 혐의로 수원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됐다.
1931년 4월 30일에는 어린이날 행사 준비를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검거됐다. 이후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같은 해 11월 23일 재차 체포됐다. 이후 1932년 1월 15일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예심에 회부됐다. 1933년 3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고 같은 달 31일에 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외일보(中外日報)(1928. 9. 9, 1930. 1. 14, 3. 12, 4. 13, 4. 27, 6.25, 8. 1, 8. 20)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1. 1, 11. 9, 1931. 2. 25, 5. 15, 1932. 12. 24, 1933. 1. 17, 3. 28,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