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35년부터 만주 동변도 일대에서 조선혁명군 단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5년부터 중국 만주 동변도(東邊道)에 근거를 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단장 박창철(朴昌鐵) 휘하 단원으로 활동하며 남만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전공을 세우는 한편,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1937년 봄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9년 4월 만주 일대의 독립군 단체인 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정의부(正義府)가 하나로 통합하여 남만주 일대의 혁명군정부인 국민부(國民府)를 창립하였다. 이 국민부를 지지·육성하기 위해 조선혁명당의 당군(黨軍)으로 조직된 단체가 바로 조선혁명군이었다.
박창철은 일찍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뒤 조선혁명군에 투신하여 활동하였다. 1935년경 소대장으로 취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김활석(金活石)의 호위가 된 이후에는 집안현(輯安縣)과 관전현(寬甸縣) 일대에서 군자금 조달을 하였다. 김홍주를 비롯한 김태영(金太泳)·이영진(李永珍)·최여선(崔呂善)·김시용(金時湧)·김태묵(金泰黙)·홍석태(洪錫泰)·최승익(崔承益)은 박창철 휘하의 군인으로 만주 일대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1937년 봄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38년 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2년 2개월 18일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40년 2월 1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日報(1937. 11. 4, 1938. 2. 21, 3. 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38. 2. 25) ·韓民(1938. 4. 3) 제17호
- 東亞日報(1937. 11. 5, 1938. 3. 18)
- 京城日報(1938.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