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35년 9월경부터 비밀결사 전위동맹원인 황성연의 지도로 공산주의 등 신사상을 학습하였다. 전위동맹은 황성연·김칠성(金七星)·나필환(羅弼煥) 등이 농민대중을 중심으로 실천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을 느껴, 1934년 9월 20일 김칠성의 책임 아래 결성한 조직이다. 주길동은 1935년 11월부터 1936년 3월까지 전위동맹에서 개설한 야학소에서 무산아동(無産兒童)을 가르치는 일명 프로칼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재용과 함께 지도면 내양리와 둔곡리(芚谷里)에 개설한 둔곡야학소(芚谷夜學所)에서 임복동(任福桐) 등 25명의 아동을 교육하였으며, 자택이나 황성연의 집 등에서 소년 약 30명에게 독서·산술(算術)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편 1935년 10월 10일경 전위동맹에서는 지도기관 외에 지도면 내에서 농민대중을 중심으로 한 실천운동 기관인 농민조합을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지도농민조합 건설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주길동은 1936년 11월 10일 지도면 봉리(鳳里) 김종원(金鍾元)의 집에서 김재용(金在鎔)·김종철(金鍾哲) 등과 함께 지도농민조합건설위원회에 가입하였다. 책임은 김재용이 맡았으며, 주길동은 선전부(宣傳部)를 담당하였다.
이러한 전위동맹의 존재와 활동이 1937년 11월 초 목포경찰서(木浦警察署)에 탐지되어 13일 이래 전라남도경찰부 고등과의 지휘 아래 100여 명이 검거되었는데, 이때 주길동도 체포되었다. 1938년 8월 18일 임귀석(林貴錫) 등 58명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어, 29일 예심에 회부되었다. 1940년 2월 29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3월 4일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1940. 2. 29)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8. 8. 20,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