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35년 11월경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김칠성(金七星)의 권유로 적동야학소(笛洞夜學所)를 개설하여 12월 말경부터 무산아동(無産兒童)을 교육하였다. 김칠성은 1934년 9월 20일 황성연·나필환(羅弼煥) 등과 함께 실천운동의 지도기관으로서 ‘전위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그 책임자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김한용보다 6살 위인 친형 김한필(金漢弼) 역시 무안군 농회(農會) 지도원으로 근무하면서 김칠성의 지도로 사회과학연구회·전위동맹 등 비밀결사운동에 참가해 활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한용이 개설한 적동야학소 역시 전위동맹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지도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위동맹의 존재와 활동이 1937년 11월 초 목포경찰서(木浦警察署)에 탐지되었다. 13일 이래 전라남도경찰부 고등과의 지휘 아래 10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때 김한용도 체포되었다. 1938년 8월 18일 임귀석(林貴錫) 등 58명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다. 29일 예심(豫審)에 회부되었다. 1940년 2월 29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3월 4일 형 김한필 등과 함께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김칠성, 김한룡의 판결문 포함)
- 동아일보(東亞日報)(1938. 8. 20,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