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35년 음력 1월 재만 독립군단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만주에 근거지를 둔 독립운동 단체들은 1927년 이후 항일무장투쟁계의 통합을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만주의 모든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만드는 통합체는 구성하지 못했으나, 1928년 12월 혁신의회(革新議會)와 1929년 4월 국민부(國民府)를 성립시켰다. 혁신의회는 북만주 지방을 무대로, 국민부는 남만주 지방을 활동무대로 해 성립된 단체였다.
남만주에 근거지를 둔 국민부는 보다 짜임새 있는 조직체를 구성하기 위해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그 산하의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탄생한 조선혁명군은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에 걸쳐 남만주지역의 한인사회를 관할하면서 활발한 무장활동을 펼쳤다. 중국군과 연합해 신빈현 남두령(南陡嶺)전투, 영릉가(永陵街)전투, 청원현(淸原縣)전투 등 대규모 전투를 펼쳤고, 수많은 결사대원들을 국내로 진입시켜 유격전을 벌였다.
이 같은 조선혁명군의 대원이었던 오달수는 1935년 이래 동지들과 함께 수차에 걸쳐 국내진입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오달수를 비롯한 조선혁명군 대원들의 활약은 일제에 포착되어 1937년경 체포되었다. 일제에 체포된 오달수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중병을 얻어 2년 10개월만에 옥사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思想彙報(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12호 5면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新義州刑務所長:1940. 5. 17)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1937.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