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31일 오후 4시경 경상남도 마산부의 구마산(舊馬山)에서 주민 2,000여 명이 구한국 국기인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연호했다. 군중들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고 마산감옥을 여러 차례 돌면서 만세를 외쳤다. 이에 감옥의 간수인 박광연(朴光淵)도 만세 군중에 합류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군중들은 대열을 지어 신작로 도로를 걸어서 왕복하며 만세를 외치다가 오후 7시경에 해산했다.
내서면(內西面)에서 회원리(檜原里)의 황의형(黃義馨)·회성리(檜城里)의 안종태(安鍾泰)·중리(中里)의 서성수(徐聖洙)·김재만(金在萬)·원계리(元溪里)의 서봉수(徐奉洙) 등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3월 중순 이후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마산경찰서 경찰과 마산헌병분견소 헌병들이 60여 명을 체포했다. 20여 명은 즉시 방면되었지만 38명은 1919년 5월 15일 오전 10시에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의 제1호 법정에서 징역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황의형도 이때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검사분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15일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마산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고 9월 16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8. 30)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11. 6)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20. 3. 2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3. 25, 5. 22, 9. 14)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7)(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23보, 1919. 3. 22)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1)(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관한 건, 1919. 10. 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235~2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