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홍배식은 1931년 10월 14일 유봉주(劉鳳周)의 지도하에 이영주(李永株), 김수필(金洙珌) 등과 회합하여 '일본제국주의 타도, 사유재산제도 부인,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함흥자유노동조합(咸興自由勞動組合)을 조직하였다. 이때 조합 조직 중 선전,선동부 책임자가 되었다. 1931년 10월 16일~17일 양일간, 노동조합 확대를 위해 이시화(李時華),이승환(李承煥),김규덕(金奎德)을 방문하여, 동 조합의 가입을 권유하고 조합반의 조직에 대해 협의하였다. 동년 11월 7일 러시아혁명기념일투쟁 때문에 간부들이 검거되어 조합은 거의 해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1932년 1월 8일, 유봉주, 서영근(徐榮根), 김병묵(金柄默), 이영봉(李泳峰) 등과 재건을 협의, 책임부서를 개정하고 조직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 후 조합사무소와 수십회에 걸쳐 간부회를 개최하고 기관지 붉은 주먹 및 3월 16, 7, 8일은이라는 항일문서를 출판, 배포하고 조합반 조직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1932년 1월 16일경부터 2월 22일까지 김규연(金奎淵), 박연서(朴淵瑞), 한영호(韓英鎬), 심인섬(沈麟譫, 沈國氏福), 주계섭(朱啓燮), 한원창(韓元昌) 등을 만나 조합에 가입시키고, 또 조합반 조직에 대해 설명하였다. 2월 14일, 15일의 양일에 걸쳐 조합사무소에서 윤치선(尹致善), 심건섭(沈建燮), 서영근(徐榮根) 등과 함께 '전무산노동대중인 우리들은 노동대중의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굳게 믿고 그것을 이루어야한다. 용감하게 백색테러의 야수적 탄압에 저항하자. 우리들의 날은 머지않았다. 우리의 진영인 혁명적노동조합을 사수하자.'라는 성명서를 작성 배포하였으며, 조합 기관지 붉은 주먹 2호 약 36부를 출판하였다. 2월 15일 윤치선과 함께 김규연, 박연서, 한영호, 심인섬, 주계섭, 한원창에게 붉은 주먹 2호를 각각 3부 내지 5부씩 배포하였다. 2월 28일 후임 조직부 책임 서영근과 함께 이들을 다시 방문하여 붉은신문 창간호를 각각 2부 내지 3부씩 배포하였다.
홍배식은 1933년 11월,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1934년 10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120일)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복역 중 급성폐렴으로 생명이 위독하자 형의 집행이 정지되고, 1935년 6월 4일 자택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咸興地方法院:1934. 10. 2)
- 東亞日報(1933. 7. 8, 1934. 9. 27, 1935. 6. 7)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712면
- 思想彙報(高等法院檢事局思想部) 1호 43~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