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나자 밀양에서도 서울의 3.1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한 윤세주(尹世胄)·윤치형(尹致衡)이 밀양 사립 동화중학교장 전홍표(全鴻杓)의 지도를 받아 3월 13일 밀양장날에 시위운동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윤소룡(尹小龍)이 동지 규합, 윤치형이 시위 준비를 하기로 분담하였다. 윤소룡이 3월 11일과 12일에 정동찬(丁銅燦)의 집에서 권재호(權在好) 등에게 “지금 각지에서 조선독립 시위운동이 일어나니 밀양에서도 시위운동을 하기 위하여 오는 13일 밀양장날 정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 안을 행진하자”고 하자 정동찬 등이 함께 만세시위 할 것을 결의하였다.
권재호 등은 윤소룡이 제출한 만세시위 실행에 대한 연판첩(連判帖)에 도장을 찍고 윤치형은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큰 깃발과 작은 태극기 수십 개를 만들어 이를 김병환(金餠煥)에게 교부하였다. 그리고 3월 13일 오후 1시경 윤보은·김병환을 제외한 11명은 밀양면 내일동에 있는 김병환의 상점과 그 부근에 모여 윤소룡·윤치형의 지휘 하에 무리를 지어 ‘조선독립만세’를 일제히 외치면서 시장과 군중 사이를 행진하였다. 이때 박작지도 만세를 부르며 시위 대열에 참가하여 시장을 행진하였다.
박작지는 1919년 3월 13일 밀양장날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1919. 4. 14)
- 집행원부(執行原簿)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