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2년 대한군정서원 문창학, 김학섭과 함께 함북 경원군의 신건원주재소를
공격하여 일본 경찰을 사살하는 활동을 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2년 1월 대한군정서원(大韓軍政署員) 김학섭(金學燮)은 강병관(姜秉官), 강
석훈(姜錫勳)과 러시아 시지미 지방에서 만나 국내로 잠입하여 일제 관공서를
공격하고 무기 등을 확보할 것을 협의하였다. 공격목표는 함북 웅기(雄基)항으
로 결정하였다. 김학섭 등은 사전 준비 차 2일 웅기로 출발하고, 김학섭으로부
터 이 계획을 전해들은 최치능 일행은 그날 밤 선두가 되어 시지미를 출발하여
중국 간도 일하후(日下垢)에서 김학섭과 회합하였다. 그러나 고된 행군에 대원
들이 낙오하는 등 차질을 빚자,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함북 경원군(慶源郡)의
신건원주재소(新乾源駐在所)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공격은 2개조로 나뉘어
주재소와 수비대를 동시 공격하기로 하였다. 5일 새벽 1시, 다른 1개조가 주재
소를 공격하는 동안, 최치능과 김학섭은 신건원수비대 막사를 공격하여 수비대
의 출동을 제압한 뒤 퇴각하였다.1923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강도, 살인, 폭발물취체벌
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 건조물 손괴,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무기
징역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3년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6년 7개월 10일 동안 옥고를 치르고 1940년 1월 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의 件 具申(京城刑務所長:1939. 12. 11), 執行指揮書(경성복심법원:1923. 6. 21), 第1審判決判決抄本(京城覆審法院:1923. 6. 20), 身上表(1939. 12) 假出獄關係書類
- 朝鮮日報(1923. 6. 23)
- 獨立新聞(1923. 6. 13)
- 新乾源을 습격한 不逞鮮人에 관한 件(1922. 3. 2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32
- 東亞日報(1922. 1. 7, 1. 18, 1923. 6. 2, 6. 23)
- 判決文(咸興地方法院 淸津支廳:1923. 5. 26)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390~391면
-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1990) 96~9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4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