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석락은 전라북도 진안(鎭安) 출신으로 1919년의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면서 한일병탄(韓日倂呑)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었고 점차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는 등 민족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1927년 10월경 진안군 진안면 고림사(古林寺)의 주지 이성룡(李龍城)에게서 북두(北斗), 천수(千手), 산신(山神) 등 조선 재래의 각 경문(經文)을 약 3개월 동안 배웠으며, 이후 1929년 4월말부터 진안군 진안면 단양리(丹陽里) 마이산(馬耳山) 내 성지동(聖池洞) 등지에서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기원제를(祈願祭)를 거행하였다.
1935년 12월 진안면 단양리 마이산 성지동에 제단을 만들고 철제 불상을 중앙에 안치하고 제단의 후방에 독립기(獨立旗),중앙기(中央旗),태극기(太極旗) 3개를 세우고 북방과 서방에도 북방흑기(北方黑旗)와 서방백기(西方白旗)를 각각 세우고 제단에 공물(供物)을 바치고 기원자(祈願者)를 참례시켜 나팔을 불고 목탁을 두드리며 각종의 경문(經文)을 읽고 기원자들에게 고성(高聲)으로 '천하 팔도강천(八道江川) 회복, 도탄에 빠진 억조창생(億兆蒼生) 구제, 독립기원 만세' 등을 외치며 기원제를 거행하였다.
김석락은 1935년 12월부터 1938년 5월까지 진안면 단양리 마이산과 백운면 운교리, 마령면(馬靈面) 금당리(金堂里) 등지에서 기원제를 지낸 후 제사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국권회복과 조선독립을 기원하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는 등 10여 차례의 독립기원제(獨立祈願祭)를 거행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김석락은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내 각지의 명산에서 독립기원제를 거행하면서 단원을 규합하던 중 1938년 5월 13일 진안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그해 11월 15일 전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12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12권 67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全州地方法院:1938. 12. 19)
- 最近에 있어서의 朝鮮治安狀況(朝鮮總督府 警務局)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