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이익교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조치에 대해 매사 반감을 가지고 있던 중 1939년 1월 초순 자택에서 군용 가마니 짜기 독려 차 내방한 구장(區長) 이종건(李種建)에게 '지금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기는 것이 조선인을 위하여 좋을 것인데, 중국이 패하면 세금을 가지각색으로 뜯어낼 것인데, 중국이 이기면 양반들도 전과 같은 위세를 떨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1939년 1월 하순에도 이정우(李貞雨),김정권(金正權) 등에게 '일본을 오랑캐 나라라고 하지 않으면 안되고, 또 중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패하여 중국이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이유는 '현재에도 여러 가지 세금이 많아 곤란한 지경인데, 일본이 승리하면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거둘 것이니 더욱더 생활이 곤란하여 도탄에 빠질 것'이라고 하였다. 1939년 3월에도 보국저금(報國貯金)을 '집금'하러 온 저금조합장(貯金組合長) 김만권(金萬權)에게 '보국저금이 무엇인지 아는가? 도둑과 같은 저들이 돈을 빼앗아가 곤란해지지 않겠는가?'라는 등 중일전쟁에 관련하여 일본이 패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익교는 일제의 패배는 조선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다시 부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선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익교는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40. 2. 6)
- 思想彙報(朝鮮總督府) 제22호 52면
- 思想彙報(朝鮮總督府) 제23호 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