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3년 재만 독립군단인 독립단(獨立團) 동지 6~7명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국내로 진입하여 평북 벽동군의 운시(雲時)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김용필은 벽동군의 대안 중국 땅인 남만주에 근거지를 둔 독립단의 독립군이었다. 이 시기 남만주에는 1922년 독립군 통합운동이 전개되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어 있던 시기였다. 대한통의부에는 1919년 4월 성립된 대한독립단의 일부도 가담하게 되는데 김용필은 통의부에 가담하지 않고 대한독립단이란 이름을 계속 유지하며 활동한 인물로 판단된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말 내부 이념의 문제로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으로 나뉘고, 대한통의부에 가담했던 일부는 1923년 다시 통의부를 나와 의군부(義軍府)를 만들기도 한다. 이 같이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대한독립단이라는 이름은 192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한국 독립운동선상에 나타난다. 이는 처음 대한독립단에 가담한 인물 중 이 단체를 꾸준히 견지하며 독립운동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1923년 8월 14일 김용필을 비롯한 독립단 단원들은 운시주재소를 습격해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고 주재소를 전소시켰다. 그리고 다량의 무기를 획득해 귀대하였다. 그러나 이 유격전으로 말미암아 김용필은 그 해 10월 일제에 체포되어 1924년 1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방화·살인·강도 등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5년 9개월 만인 1929년 7월 18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新義州刑務所:1929. 7. 19)
- 東亞日報(1924. 3. 24·5. 8)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1924.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