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홍기는 1924년 중국 만주 북간도지역을 무대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 대병력의 간도침입으로 독립군기지 및 한인사회는 초토화되었다. 일제 침략군은 서북간도 전 지역의 한인 촌락을 습격해 무장하지 않은 한인들까지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도처에서 수색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참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와 같은 비인간적 만행은 이듬해인 1921년 5월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만행이 있은 후 일제는 자신들의 중점 탄압 대상지였던 북간도지역에 대규모 경찰과 군병력을 주둔시켜 독립군의 활동근거지를 없애고자 하였다. 따라서 대다수의 독립군들은 북만주 또는 서간도로 이동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김홍기는 서간도에 근거를 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의용대원으로 1924년 4월 북간도의 연길현을 무대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간도참변 이전 북간도를 무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곳의 지리와 정세를 잘 알았고 이후 서간도로 옮겨 대한통의부에 가입해 활동했던 것이다. 김홍기는 대한통의부 재무부장의 직인이 찍힌 군자금 모금 증서를 소지하고 북간도에 파견되어 1924년 4월부터 5월까지 연길현의 용지사(勇智社) 대흥촌(大興村)·대허육리(大許六里), 화룡현(和龍縣) 덕신사(德信社) 등을 다니며 활동하다가 같은 해 6월 간도영사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김홍기는 1924년 8월 2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 獨立을 標榜한 强盜犯人 檢擧에 관한 건(1924. 7. 8)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9)
- 新韓民報(1924. 8. 28)
- 朝鮮日報(1924. 7. 24, 1925. 2. 17)
- 判決文(淸津地方法院:1925. 2.. 4)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淸津刑務所, 1928.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