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이기포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봉화군(奉化郡) 소천면(小川面) 분천리(分川里) 출신으로, 1920년 음력 7월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의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군비단은 서간도의 장백현을 무대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로 장백현 팔도구(八道溝)를 중심으로 1919년 이희삼(李熙三),이영식(李永植),이병호(李炳浩)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 군비단의 총단장은 이희삼이 맡았고 3개 소대로 구성된 1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중대장은 이영식, 참모장은 이병호가 담당하였다. 지역별로 지단,지부를 설치하였으며, 지단장 및 지부장 밑에는 총무,재무,서기,통신사무원 등이 임명되었다. 이후 군비단은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흥업단(興業團), 광복단(光復團), 태극단(太極團),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등과 연합하여 지속적인 항일전쟁을 전개하였다. 이기포는 군비단이 흥업단(興業團)과 병합하여 국민단(國民團)으로 개칭되었을 때 이에 참가하였다.
이후 이기포는 1921년 음력 10월 경 김성연(金成渕) 등과 함께 삼수군(三水郡) 호인면(好仁面) 영성금융조합(嶺城金融組合)을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기상 악화로 여의치 않자 계획을 변경하여 함남(咸南) 삼수군(三水郡)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일제 경찰에게 부상을 입히고 주재소를 전소(全燒) 시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이기포는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 8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咸興地方法院:1926.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