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원적은 함남(咸南)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문성리(文星里)이다. 한흥기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북간도(北間島)로 이주하여 동흥중학(東興中學)을 졸업하였으며, 의란구(依蘭溝)에 있는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8년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의란구에서 동만조선청년총동맹(東滿朝鮮靑年總同盟) 조사부(調査部) 간부로 활동하다가 1928년 9월에 발생한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間島共産黨事件)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동(同) 사건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 동만도 간부 책임비서 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간부위원 이정만(李正萬)을 비롯하여 선전부장 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간부 책임비서 강만희(姜晩熙), 재정부장 오창수(吳昌洙) 등 72명이 검거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서울로 압송되어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에서 취조를 받았으며, 예심에 회부된 사람은 49명이었다.
투옥된 한흥기는 폐병에 걸려 1930년 1월 11일 병보석(病保釋)으로 풀려났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0. 1. 5)
- 朝鮮日報(1930. 3. 23)
- 中外日報(1930. 2. 21)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8) 4권 3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