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순호는 1920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으로 평북 의주에서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벌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성립되었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넘어 와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던 청장년들을 통합하여 성립한 단체였다. 이 단체의 중심이념은 복벽주의(復辟主義)였다.
본부는 성립지인 삼원보에 두었으며, 그 주변의 환인(桓仁)·장백(長白)·무송(撫松)·임강(臨江)·관전(寬甸)·집안(輯安)·흥경(興京)·통화(通化)·본계(本溪)등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국내의 각 도에도 지단을 설치해서 간도와 국내를 연계한 항일무장투쟁 루트를 만들었다.
대한독립단은 보다 견고한 독립군단을 만들기 위해 군자금 모금에 힘썼다. 따라서 서간도지역 각 지단에 재무부를 두고 이 조직의 책임 하에 경제력을 가진 이주 한인들에게 기부금을 내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국내로는 대원들을 파견해 친일재산가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금하도록 하였다. 김순호도 대한독립단의 이 같은 방침에 의해 국내 특파단이 되어 평북지역으로 파견되었다.
김순호는 1920년 6월 말경 동지 8명과 평북 의주군 고관면(古舘面)에 진입하여 친일파 홍응경(洪應境)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음력 8월 7일 밤 동지 최운봉(崔運鳳)·손봉선(孫鳳善) 등과 함께 의주군 월화면(月華面) 화금하동(化今下洞)으로 가 재산가 이경석(李景碩)에게서 군자금 110원을 모금하였다. 이후에도 김순호를 비롯한 이들 대한독립단 파견대는 의주군 내 친일재산가들의 집을 방문해 수백원의 군자금과 8,600원에 달하는 향후 지불계약서를 받아냈다. 그러나 이 같은 활동을 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4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강도 및 살인·방화 등으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1. 4. 14)
- 判決文(高等法院:1921. 5. 30)
- 東亞日報(1921. 4. 20)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9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12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