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본적은 함경북도(咸鏡北道) 무산군(茂山郡) 영북면(永北面) 지초동(芝草洞)이다. 이구현은 1920년 음력 2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延吉縣) 간도(間島)지역에서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였다. 동단(同團)은 1920년대 초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항일무장단체로 왕청현(汪淸縣) 춘양사(春陽社) 북삼차구(北三岔溝)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산포대 출신 의병을 핵심으로 하였으며 단원 600여명이 소총 600여 자루, 권총 30여 자루 등으로 무장하고 청산리 전투, 특히 어랑촌 전투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구현은 의군단의 병사(兵士)로서 청산리에서 2개월간 군사훈련(軍事訓鍊)을 받았으며, 동년(同年) 4월에는 의군단 대장(隊長) 이범모(李範模)의 명령으로 단원 장약삼(張約三)과 함께 일제의 밀정 김대성을 화룡현(和龍縣) 명신사(明臣社) 충신장(忠信場) 침사(砧祠)의 삼림에서 처단하였다.
동년(同年) 음력 5월 간도지역에서 군자금과 군수품 모집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된 이구현은 1921년 6월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소위 제령7호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無期懲役)을 받고 약 9년 3개월 간 옥고를 치른 후 1930년 9월 석방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第一審 判決抄本(咸興地方法院淸津支廳, 1921. 7. 27)
- 假出獄關係書類(조선총독부, 1930. 8. 28)
- 집행지휘서(조선총독부, 1921.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