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시풍은 1919년 7월 재만 독립군단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성립되었다. 국내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넘어와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던 청장년들을 통합하여 성립한 단체였다. 이 단체가 추구한 핵심이념은 광복된 조국에 다시 왕조를 부활하는 복벽주의(復主義)였다.
삼원보의 본부와 함께 그 주변의 환인(桓仁)·장백(長白)·무송(撫松)·임강(臨江)·관전(寬甸)·집안(輯安)·흥경(興京)·통화(通化)·본계(本溪) 등에 지단을 설치해 활동했다. 그리고 국내의 각 도에도 지단을 설치해 간도와 국내를 연계한 항일무장투쟁 루트를 만들었다.
성립 초기 대한독립단은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척결에 주력하였는데, 김시풍도 본부의 그 같은 방침에 따라 친일 밀정을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는 동지 2명과 함께 1919년 12월 7일 집안현(輯安縣) 마구(馬溝)에서 밀정 최경태(崔京泰)를 처단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된 최시풍은 1920년 10월 26일 평양복심복원에서 살인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0.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