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평남 맹산군에서 재만 독립군단인 태극단(太極團)의 국내 파견원을 지원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압록강과 접해 있는 중국 장백현(長白縣)과 인근의 임강(臨江)·집안(輯安) 등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태극단은 국내 진입 유격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독립군단이었다. 1920년대 초반에는 자체의 무장력을 갖추어 활동하다가 보다 효율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1922년 4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진단(大震團)·광복단(光復團) 등과 통합해 광정단(光正團)을 성립시켰다.
방석홍은 태극단의 단원인 안경준(安敬俊)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위해 1924년 7월 자신을 방문하자 그를 도울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 4월 15일 동지 안영호(安永浩)와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함남 영흥군(永興郡) 중흥리(中興里)로 가 군자금 300원을 모금하였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평남 덕천군(德川郡) 덕천면 산양리(山陽里)에서 한인 재산가로부터 군자금 212원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일제의 검거망에 포착되어 방석홍과 동지 안영호는 일경에 체포되었다. 방석홍은 1925년 9월 2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총포화약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6년을 받았다. 그리하여 평양형무소 진남포지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중병을 얻어 3년 9개월 만에 가출옥되었다. 고향 맹산으로 돌아 온 방석홍은 결국 옥중에서 얻은 중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1929년 5월 2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地方法院:1925. 9. 25)
- 執行指揮書(平壤地方法院檢査局, 1925. 9. 25)
- 가출옥사망의 건 보고(平壤刑務所 鎭南浦支所, 1929. 5. 10)
- 假出獄의 件 報告(平壤刑務所 鎭南浦支所, 1929.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