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정현필은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
어 옥고를 치렀다.
단천군은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천도교가 성하였고, 단천군 만세운동은 전적
으로 천도교가 주도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단천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된 것은
3월 3일이었는데, 이는 시간적으로 인근의 북청(北靑)이나 이원(利原)보다도 빨
리 전해진 것이다. 선언서를 입수한 천도교 지사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교조 최
제우의 순도기념일(殉道記念日)인 3월 10일을 단천의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 각 면에서 온 3백 명의 신도들이 천도교당에 모여 독립선
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다음,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행진에 돌입하였다.
시위 군중들이 천도교당을 출발하여 용현리(龍峴里)와 하서리(下西里)를 거쳐
헌병대로 향하였을 때는 시위군중이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 시위로 헌병대
에 의해 7명이 한꺼번에 희생당하고 142명이 체포되었다. 다음날 11일에도 만세
시위가 일어나 헌병대와 군청을 공격하였다. 극심한 유혈 충돌이 두 번이나 벌
어지자 단천헌병대의 요청에 의하여 3월 17일 북청으로부터 장교 이하 16명의
병력이 이곳으로 파견되어 더욱 삼엄한 경계와 탄압을 가하였다. 3월 22일에는
북두일면(北斗日面)에서 또 만세시위가 전개되어 헌병대를 공격하였고 8명의
군중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단천의 3.1운동은 3월 1달 동안에 현장에서의 사
망자 33명, 중경상자 24명, 피검자 2백 90명을 내는 격렬성을 보였다. 이 피해상
황은 함경도 전역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시위 후 체포된 정현필은 1919년 5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
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공소하여, 8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그는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16)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20~723면
- 刑事控訴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