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최여봉은 1927년 경남 김해청년회(金海靑年會) 집행위원장 1928년 신간회(新幹會) 김해지회(金海支會) 간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김해청년동맹(金海靑年同盟)에서 국제청년데이(國際靑年日)를 기념해 개최한 강연회에서 ‘무산청년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30년 김해 읍내에서 광주학생운동과 관련된 내용의 격문살포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의 관련자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1년 9월 경남 양산군(梁山郡) 상서면(上西面)에서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朝鮮共産黨再建協議會) 관계자 권대형(權大衡) 등과 만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농민의 혁명의식을 양성시키고 이들을 지도할 경남지방에서의 적색농민조합건설협의회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고 그 자리에서 경남적색농민조합동부위원회(慶南赤色農民組合東部委員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최여봉은 이 비밀결사의 책임자로 추대되었고, 이후 김해, 창원, 울산 등지에서 농민조합을 지도하며 활동하였다.
최여봉은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33년 3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월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33년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33. 5. 9)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7. 5. 13, 1929. 8. 29, 1932. 2. 28·7. 22·8. 29, 1933. 1. 28·1. 29·2. 4·3. 1·3. 16·3. 18·3. 20·3. 25·3. 27, 1935. 9. 27)
- 中外日報(1927. 8. 4, 1928. 3. 28, 1930. 2. 22)
- 朝鮮日報(1930. 1. 28)
- 新幹會代表會員 選擧狀況에 관한 件(1930. 10. 11) 思想에 關한 情報綴 제10책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권 606~607면
- 朝鮮重大思想事件經過月表 思想彙報(朝鮮總督府) 제2권 제11·12호
- 朝鮮重大思想事件經過月表 思想彙報(朝鮮總督府) 제3권 제1·2·3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