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24일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 해미 읍내에서 이계성(李啓聖) 등이 주도한 3.1운동에 참여했다.
3월 24일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서 저축조합서기인 이계성이 해미공립보통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의 고별회 자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계획했다. 이계성은 재학생 김관룡(金寬龍)・기독교도 김병선(金炳善) 등을 찾아가서 보통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기독교도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유하고 동의를 얻었다. 오후 7시경 고별회 장소인 박선양(朴宣陽) 집에 재학생 장기남(張基南)・양태준(梁泰準) 등과 졸업생 이봉이(李鳳伊)・유한종(劉漢鍾)・최흥량(崔興良) 등이 모였다. 고별회가 끝난 후 김관룡은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했다. 너희도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고 참석자들의 동참을 요구했다. 이에 찬성한 이명학・유세근(柳世根)・김연태(金然澤) 등 20세 청년들 10여 명 등은 오후 11시 경 주도 인사들과 함께 해미면사무소 앞과 우(牛)시장 등으로 활보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명학은 만세운동 참가로 서산경찰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서산경찰서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의 즉결처분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19. 4. 2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