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 음력 11월 중국 길림성 장백현(長白縣)에 근거지를 둔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압록강과 접해있는 장백현은 지형이 험해 많은 한국 독립군단들이 근거지를 구축한 곳이었다. 1919년 말에는 활발한 대일항전을 전개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이 조직되었고, 1920년 초에는 태극단(太極團)이 조직되었다. 이들 군단 이외 다른 지역에 본부 근거지를 가진 여러 독립군단들도 무장활동이 유리한 장백현에 지단을 설치했다.
따라서 1921년 1월에는 장백현에 근거지를 둔 흥업단(興業團) 지단이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태극단(太極團)·대진단(大震團) 지단·광복단(光復團) 제1, 제2 결사대와 연합시켜 독립군연합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 연합회 구성 군단들은 이후 군사작전을 함께 계획하여 효과적이고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2년 4월에는 이 곳에서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이 통합해 광정단(光正團)을 결성하였다.
이 같이 장백현은 다수의 독립군단 근거지가 되었고, 신태순이 소속한 조선독립단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독립단의 통신원이었던 신태순은 1921년 1월 15일 같은 장백현에 거주하면서 독립군의 동정을 일제에 밀고한 밀정 김형걸(金亨傑)을 처단하였다. 밀정이 살해되자 일제는 그 주모자를 찾기위해 혈안이 되었고, 결국 신태순은 일경에 체포되어 1923년 7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을 받고 5년 10개월의 옥고를 치르다가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1929. 4. 13)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1923.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