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 음력 4월경 재만 독립군단인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흥업단은 1920년 남만주의 무송현(撫松縣)에 근거지를 구축하며 성립된 독립군단으로 압록강에 설치된 일제의 국경수비대를 대상으로 무장활동을 펼치는 한편, 국내진입 유격전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흥업단은 1921년 1월 적극적인 항일 무장투쟁을 다지는 공시문(公示文)을 반포하고, 독립군의 힘을 상승시키기 위한 독립군 연합체 구성을 추진했다. 즉 흥업단 지휘부는 1921년 1월 장백현(長白縣)에 설치된 흥업단 지단(支團)을 그 지역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태극단(太極團)·대진단(大震團) 지단·광복단(光復團) 제1, 제2 결사대와 연합시켜 독립군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연합회를 구성한 군단들은 이후 군사작전을 함께 계획하여 효과적이고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2년 4월에는 대한독립군비단·대진단·흥업단·태극단·광복단 등이 통합해 대한광정단(大韓光正團)을 성립시켰다. 박승삼은 이 군단의 단원이 되었다. 남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광정단은 1924년 11월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 등 남만주에 근거를 둔 8개 단체와 통합해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박승삼은 광정단 북부 대표인 방윤풍(方允豊)이 정의부 성립을 위한 통합회의에 참가할 여비 마련을 위해 무송현에서 모금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박승삼은 신의주지방법원 강계지청에서 1926년 3월 31일 소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로 징역 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3년 2개월여의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4월 7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한국독립운동사사전(독립운동사연구소) 제3권 342~343면
- 한국독립운동사사전(독립운동사연구소) 제7권 701~702면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 江界支廳:1926. 3. 31)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新義州刑務所:1929.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