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 서간도에 근거지를 둔 독립군단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용생은 1922년 음력 8월 16일 동지 9명과 함께 벽동군으로 진입해 친일재산가들로부터 600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같은 달 28일에는 삭주군으로 이동해 군자금 400원을 모금하고, 9월 3일에는 구곡면(九曲面)에서 일경 50여 명과 교전을 벌였다.
1924년 5월 19일 김용생은 재만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府) 대원으로서 압록강변에서 조선총독 사이토(齋藤實)를 공격하는 전투를 수행했다. 1924년 초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분리해 성립된 참의부는 그 시기 다른 어느 독립군단 보다 활발한 무장투쟁을 벌였던 군단이었다. 압록강과 접해 있는 집안현(輯安縣)에 본부를 두고 그 주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독립군단이었다.
사전에 사이토가 국경을 순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참의부에서는 제2중대 대원들로 특공대를 조직하여 위원군 마시탄(馬嘶灘)에 매복시켰다. 아침 9시경 사이토가 탄 경비선 웅비호(雄飛號)가 압록강을 따라 참의부 특공대원들이 매복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지휘관의 명령을 받은 특공대원들은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특공대의 순간적인 공격으로 당황한 사이토를 태운 일제의 경비선은 단 한번의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참의부 대원으로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김용생은 1929년 11월 일제의 봉천영사관 해룡(海龍)분관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1932년 9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살인 등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병을 얻어 약 9년 11개월만에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9. 11. 19·12. 19, 1932. 6. 25)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2권 3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