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태극은 1927년 11월 20일, 북간도 용정 용정노동학원 내에서 열린 간도유학생회(間島留學生會) 임시대회에서 위원으로 선임되어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재돈화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당원으로서 간부 강문수(姜文秀)로부터 국내의 당재건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아 11월 하순 국내로 들어와 함북 경성에서 임태호(林泰虎)를 만나 당재건운동에 종사할 것을 전하였다. 이후 원산에서 최치운(崔致云)이라고 개명하고 노동에 종사하며 원산노동연맹(元山勞動聯盟)에 출입하여 동지를 모집하였다. 1930년 6월, 국내로 들어온 재돈화조공재건준비위 간부 오혁세(吳赫世)에게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였다. 오혁세로부터 돈화(敦化)에 본거를 둔 재건준비위원회를 함흥으로 이전하고, 자신이 원산에서의 조직책임자로 결정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산노동연맹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박태선(朴泰善)과 친교를 맺으며, 이주하(李舟河), 전균(全均), 김현제(金顯濟) 등과 노동조합원의 의식 교양과 지도를 목적으로 한 그룹을 조직하였다.
그 후 1931년 11월 20일경, 박태선으로부터 러시아 공산대학에 입학시킬 청년들에게 러시아 입국 경로를 안내하라는 지시와 함께 여비를 받았다. 그러나 출발 전 체포되었고, 경기도경찰부에서 취조를 받았다. 1년 8개월만인 1933년 8월 1일 경성지방법원 예심이 종결되어 동법원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예심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중앙일보(1933. 8. 2)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 4권 615~659면
- 東亞日報(1933. 8. 2)
- 中外日報(1927.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