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22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교통부 참사 윤응념(尹應念)이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집을 위해 상해(上海)로부터 귀국했다. 이어서 12월 황해도 재령군에서 숨겨 둔 권총 두 자루와 탄약 2백여 발을 확보했다.
경기도 인천 출신인 윤도중은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여 윤응념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모의했다. 그는 선부(船夫) 출신으로 1923년 1월 경기도 부천군(富川郡)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추진했다. 같은 해 3월 인천군에서 독립운동 동지들이 섬을 오가는 것을 선박으로 지원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윤응념 등을 인천 만석정 해안에서 북도면 장봉리 해안으로 배로 이동시켜주고, 다시 시도(矢島) 해안으로 이동시켰다. 그로 인하여 1923년 5월 체포되어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7호 위반‧강도’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豫審終結決定)(경성지방법원 : 1923. 7. 31)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23. 9. 25)
- 매일신보(每日申報)(1923. 5. 19, 5. 20, 9. 9, 9. 19, 9. 26, 10. 13)
- 조선일보(朝鮮日報)(1923. 5. 20, 8. 2, 9. 19)
- 동아일보(東亞日報)(1923. 5. 20, 1923. 8. 1, 9. 19, 9. 2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