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시위는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경기도(京畿道) 개성군(開城郡) 상도면(上道面)에서도 많은 군중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충청북도(忠淸北道) 괴산(槐山) 출신인 이만석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였다. 그리하여 3월 29일 밤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상도면 상도리에서 대성면 풍덕리(豊德里)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시위 소식이 일본 헌병대에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병주재소와 연결된 전신주를 파괴하고 전화선을 절단했다. 이처럼 일제의 탄압을 막기 위하여 개성과 풍덕 사이의 통신을 마비시키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전신법(電信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처분을 받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9. 5. 22)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 : 1919. 7. 28)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10. 16)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1920. 9.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538~54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2권 1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