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15일 함남 갑산군(甲山郡) 장평면(長平面) 서부리(西部里) 갑산천도교구실(甲山天道敎區室)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갑산 천도교 전교사인 김명수는 3월 초순경 풍산군(豊山郡) 하지경리(下地境里)의 천도교구로부터 지금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만세시위에 호응하여 갑산에서도 궐기하라는 서신을 받았다. 동년 3월 12일 후지리(厚地里)에 사는 정국태(鄭國泰)의 집을 찾아가 마침 그곳에 있던 정수웅(鄭秀雄)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알리고 거사 계획을 짰다. 거사일은 15일로 정하였다.
약속한 15일이 되자 천도교 교구당에는 200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오후 2시경 조병학(趙秉學)이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자 감격한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어서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급보를 받은 혜산진수비대(惠山鎭守備隊)는 장교 이하 12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일경과 합세하여 가까스로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날 밤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김명수는 이날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함흥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상소하였으나, 1919년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6월이 확정,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8.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44~1046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6. 2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26~728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