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김시찬이 활동한 교파는 차경석을 교주(敎主)로 한 보천교(普天敎, 일명 太乙敎) 계통의 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교주 차경석 아래에 60방주(方主)라는 고문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6인조-12인조-8인조-15인조 등의 조직을 갖추었다. 또 각각 30원-15원-10원-5원의 치성비(致誠費)를 내어 일부는 제사 비용에 쓰고, 나머지는 전라북도 정읍(井邑)의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도록 하였다. 당시 교도들 사이에서 이 독립운동 자금은 고폐(告幣)라는 은어(隱語)로 불렸다.
김시찬은 1920년 음력 8월경 안동군 풍서면(豊西面) 매곡동(梅谷洞) 산속에서 입도제(入道祭)를 치르고 일심동체(一心同體)를 맹서하여 흠치교 교도가 되었다. 8인조에 가입하여 치성비 명목의 운동자금을 내고, 겉으로는 종교 활동을 표방했으나 국권회복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신도들과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4월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5월 23일 기소되었다.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안동지청(安東支廳)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1921.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