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재만 독립군단 소속 독립군의 국내진입 유격활동 시 독립군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한민족의 조국광복에 대한 의지가 고조되자 서북간도지역에 구축된 독립군기지에서는 무장력을 갖춘 독립군단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1919년부터 이듬해인 1920년까지 북간도에서는 김좌진(金佐鎭)이 이끈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비롯해 국민회군(國民會軍)·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등이, 서간도에서는 이상룡(李相龍)이 이끄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비롯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이 성립되었다.
이들 독립군단의 독립군들은 만주까지 침입해 들어 온 일본군들을 맞아 봉오동(鳳梧洞)과 청산리(靑山里)에서 전첩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소규모 파견대를 결성해 국내로 진입해 유격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독립군 파견대가 국내진입 유격전을 펼칠 때는 파견지에 거주하는 애국 청장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채홍도 이와 같은 형태로 독립군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국내진입 독립군 유격대가 평북 자성경찰서의 형사 계모(桂某)의 가족을 공격할 때 연락원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이 같은 활동으로 그는 일경에게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1923년 10월 30일 자성군 자작령에서 총살되어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3.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