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상준은 경북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에서 독립만세운
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벌어질 때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에 사는 박재필(朴在
弼)은 우곡면 도진동 노경익(盧敬益)의 고용인 박영화(朴英華) 등과 함께 도진동
에서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6일 오후, 박재필은 목제
나팔을 불고 박영화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동민에게 만세시위를 하자고 외쳤다.
이상준을 비롯한 도진동민들은 하천변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동리를
누비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동리를 일주한 후 이들 군중시위대는 우곡면사무
소 앞으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면장이 나와 이들의 해산을 간청하
자 군중시위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그 후 주동 인물 박재필·박영화·박차석(朴
且石) 등이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다.
시위 후 체포된 이상준은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5. 1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72~4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