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서금이는 경북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
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3월 8일 대구 학생의거는
대구 주변일대의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의 분발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
였다. 비안면 쌍계동(雙溪洞)의 의거일은 1919년 3월 12일로 결정되었다. 박영화
(朴永和)·배중엽(裵重曄)·배달근(裵達根)·박영달(朴永達) 등이 태극기 200매를
만들어 3월 12일 정오 박영신(朴永新) 집 앞에 모인 약 200명의 군중에게 태극
기를 나누어 주고 봉기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어 동리
를 누비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고 뒷산에 올라 만세를 고창한 후 해산하였다.
급보를 받고 의성 경찰서 경부(警部) 경찰부장이 오후 4시 주재소로 달려와 이
곳 경찰을 지휘하여 주동 인물들을 검거하였다.
이때 체포된 서금이는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
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義城支廳:1919. 4. 2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68~3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