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강원ㆍ충북ㆍ경북 지역에서 이교영(李敎永)ㆍ한명만(韓明萬)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교영은 1907년 이명상(李明相) 의병장과 호응하여 거의한 후 1909년 체포될 때까지 3백여 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강원도 영월(寧越), 충북 영춘(永春)·단양(丹陽), 경북 영천(永川)·풍기(豊基)·순흥(順興)·예천(醴泉)·상주군(尙州郡)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우수만은 1909년 8월 이교영의 지휘 아래 경북 안동군(安東郡) 풍산면(豊山面) 서미곡리(西尾谷里), 영천군 금광석리(金鑛石里)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한명만의진에서 활동하다 같은 해 11월 18일 제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17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7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暴徒逮捕에 關한 件(1910. 3. 31) 暴徒에 關한 編冊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7) 제16권 62면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 : 1909.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