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변성출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10년 1월 경북 안동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7년을 받았으며, 1922년 1월부터 1923년 1월까지 경북 영주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원으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을 받았다.
1910년경 경상북도 소백산과 일월산 일대에는 이강년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김상태,최성천,정경태,윤국범 등의 의병장들이 영주,순흥,풍기를 중심으로 안동,봉화,예천 일원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을 피해 학가산과 일월산, 그리고 강원도의 산간지대를 전전하며 소부대를 단위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변성출은 1910년 초 안동 북후면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1월 중 곤봉을 휴대하고 안동군 북후면(北後面) 도계동(道溪洞) 권상황(權相璜)에게 군자금징발명령서(軍資金徵發命令書)를 보이며 두 차례에 걸쳐 전(錢) 50양(兩)과 6량(兩)을 모금하였으며, 같은 달 북후면 두산동(斗山洞) 동장 강성수(姜性秀)에게 전(錢) 38양(兩)과 목면(木棉)을 모금하였다. 변성출은 1910년 2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형사부(大邱地方裁判所 刑事部)에서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징역 7년을 받고 3년을 복역한 뒤 만기 출감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경북지역의 항일독립운동은 한층 치열해졌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만주에서는 독립운동 단체들이 결성되어 독립전쟁을 표방하고 국내진공을 도모하고 있었다. 당시 영주지역에서도 김찬규(金燦奎) 등의 의용단(義勇團), 박재선(朴在璿) 등의 대동단(大同團), 최명해의 길림성부속흥업단(吉林省附屬興業團)의 군자금 모집, 김찬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군자금 모집 등의 사건이 있었다.
변성출은 1922년 1월부터 1923년 1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변성출은 1923년 8월 9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大邱地方法院 刑事部)에서 소위 주거침입(住居侵入),강도(强盜),강도상인(强盜傷人) 등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刑事部:1910. 2. 7)
- 형사사건부(대구지방검찰청)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刑事部:1933. 8. 9)
- 가출옥관계서류(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