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에서 양양군농민조합(襄陽郡農民組合)을 조작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신사회건설을 추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7년 12월 30일 양양군농민조합 창립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양양군 내 여러 농민조합을 연합하여 통일적인 농민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었다. 전창렬은 동 조합의 강선지부(降仙支部)를 이끌었다. 1928년부터 1931년까지 지부회관에서 조합원 이달봉(李達鳳),최윤덕(崔允德),이재길(李在吉),손치국(孫致國) 등 10여 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는 한편, 신사회 건설과 연구 활동을 위해 강연을 개최하였다. 또한 야학을 설립 운영하고 기근과 소작문제, 농잠학교 설치 문제 등에서 지역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1932년 6월 4일부터 계속된 양양경찰서의 단속으로 총 300여 명의 조합원이 체포되었다. 이때 전창렬도 함께 체포되어 1934년 6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기까지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전창렬은 1939년 사할린으로 이주하여 선탄장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1946년 설립된 사할린 조선인학교 학부형위원장을 지내다가 1972년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4. 6. 2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咸興地方法院 : 1934. 6. 22)
- 朝鮮日報(1934. 6. 16)
- 朝鮮日報(1932.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