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2월부터 충북 단양(丹陽)ㆍ영춘(永春)ㆍ청풍(淸風)ㆍ충주(忠州), 경북 문경(聞慶) 등지에서 이명상의진(李明相義陣)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교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충북 단양 출신의 이명상은 을사늑약 이후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거의하였다. 그 후 김상한의진(金商翰義陣) 소모장(召募將)으로 청풍ㆍ단양ㆍ충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겨울 순흥(順興)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였다.
유인협은 1907년 2월부터 이명상의진에 들어가 충북 단양ㆍ영춘ㆍ청풍ㆍ충주, 경북 문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10년 2월 18일 제천경찰서 단양주재소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8월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 : 1910. 3. 2)
- 受刑人名簿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