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07년 6월 서울에서 창립된 동우회(同友會)의 인사과장을 맡았다. 7월 동우회에서는 고종(高宗) 양위(讓位)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회원들과 함께 일본국(日本國) 외무대신(外務大臣) 하야시 다다스(林董)가 왔을 때, ‘우리 황제께서 일본에 가신다.’, ‘황제의 자리를 넘겨준다.’, ‘일본이 장차 우리나라에 대해 불이익한 조약을 체결할 것이다.’는 이야기를 전파하면서, 이러한 일을 저지하고자 계획하였다. 17일 회장 윤이병이 “황제가 일본으로 떠나시는 것과 양위와 한일 양국 조약 체결에 대한 방법을 일반 국민과 의논하자”고 연설하자, 이근우(李根雨) 등 다수의 간부 및 회원들과 함께 대한문(大漢門) 앞 석고단(石鼓壇)에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경찰과 충돌하였다.
홍재설은 이와 같은 활동으로 체포되었다. 12월 29일 대한제국(大韓帝國) 평리원(平理院)에서 유형(流刑) 10년을 선고받았다. 전라남도(全羅南道) 신안군(新安郡)의 지도(智島)로 유배를 갔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평리원(平理院):1907. 12. 29)
- 황성신문(皇城新聞)(1908.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