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哈爾濱)에서 안중근 의거가 일어나자 ‘우국열사(憂國烈士)의 장거(壯擧)’라며 칭송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10년 3월 제주도 삼도리(三徒里) 병문동(兵門洞)에서 「결(訣) 안중근 군」이라고 제목을 단 글을 작성했다. 이 글은 안중근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호라! 강한 이웃에게 화를 입어 외적이 간사하고 방자하게도 나라를 보호한다하고 백성에게 굴레를 씌워, 4천년의 신성한 역사가 노예의 적(籍)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철혈(鐵血)이 끓어오르는 바, 이 통한을 어찌하리오”라고 했다. 이어 안중근의 의거를 “이번 거사에 세계의 시선이 앞다투어 집중하고, 우리 2천만 독립의 정신과 4천 년의 신성한 역사를 발표하였음은 한 몸의 광영일 뿐 아니라 곧 국가의 빛나는 광위(光威)이다”라고 높였다. 또한 “(안중근의) 뜻을 계승하고, 업을 이어갈 자 그 누구인가”라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암시했다.
이겸승은 같은 글을 두 통 작성해 한 통은 민중에게 공개했으며, 다른 한 통은 3월 7일경 서울 낙원동(樂園洞)에 있는 대한민보사(大韓民報社) 발행 신문에 게재해 줄 것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체포됐다. 1910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1910.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