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박제웅은 1919년 12월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上海)로 건너갔다. 고생 끝에 대한민보(大韓民報) 기자인 이원렬(李元烈)의 소개로 임시정부 교통부 총장 남형우(南亨佑), 차장 김철(金澈)을 만나 평소 자신의 조선독립에 대한 결의를 밝혀 드디어 임시정부원이 되었다. 박제웅은 충청남북도와 전라남북도에 임시 지방교통국의 건설을 위해 교통부의 임시특파원으로 국내에 파견되었다. 수일 후 대동단원(大同團員) 나창헌(羅昌憲)의 소개로 총재 김가진(金嘉鎭)을 만나서 군자금 모집을 부탁받고 모집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20년 3월 30일 교통사무국장 임명서, 대동단 지단장 신임장, 독립신문 등을 소지하고 상해를 출발하여 4월 12일 인천(仁川)에 도착하였다. 이어 인천을 근거지로 삼아 동월 14일경 충남 대전의 조성민(趙成珉)에게 임시정부원이 될 것을 권유하여 승낙을 받고, 15일 전남 광주의 이득수(李得洙)에게 동일한 권유를 했으나 거절당하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곧 이재연(李在淵)을 방문하고 군자금 모집원이 될 것을 권유하여 승낙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나창헌을 만나 지금까지의 활동내용과 향후 일정을 협의하고, 군자금 모집증 및 신임장, 여비 등을 받았으며, 이재연을 전라남도 지역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파견된 이재연이 체포되자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아 결국 1920년 6월경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박제웅은 1921년 7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25년 5월 만기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犯罪人名簿(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590면
- 朝鮮日報(1925. 5. 14)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21. 7. 5)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順天支廳:1921. 5. 5)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
- 高警 제19697호 上海假政府 交通部特派員 檢擧에 관한 件(朝鮮總督府 警務局長, 1920. 6. 3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上海假政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