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길우는 1928년 1월 중국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에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용정 제4야체이카에 배속되었다. 1929년 1월에는 돈화현(敦化縣) 황니하자(黃泥河子)의 야체이카에 배속되어 활동했고, 그해 6월에는 조공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입하였다.
1928년 12월 이후 코민테른은 1국 1당의 원칙을 세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해체를 지시하였다. 이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1930년 중반 해체되고 소속 당원들은 만주조선인공산주의자동맹을 결성하였다. 이 동맹은 재만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집단적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였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파벌을 우려해 한인 공산주의자들의 집단 가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격으로만 입당을 허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김길우도 개인자격으로 입당하여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소속의 당원이 되었다.
1930년 10월 중국공산당 동만특위(東滿特委) 조선국내공작위원회의 지시로 국내로 들어 온 김길우는 인쇄업을 경영하며 통신 연락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1931년 5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던 김길우는 미결감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류마티스와 척수염이 발발해 옥중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日報(1933. 7. 15)
- 朝鮮中央日報(1934. 5. 24·6. 1)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