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중국 광동(廣東)의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와 소련 모스크바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들 양교를 졸업하고 군사적 지식을 갖춘 송무영은 1920년대 중반 북간도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1927년 8월 용정촌(龍井村)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주구역국이 설립되자 이에 가담하였다.
1926년 5월 16일 북만주 위하현(葦河縣)에서 성립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그 해 여름부터 10월까지 지방구역국을 설치하였다. 1926년 여름에 설치된 북만주구역국은 동경성(東京城)에, 같은 해 초가을에 설치된 남만주구역국은 반석현(磐石縣)에, 같은 해 10월에 설치된 동만주구역국은 용정촌(龍井村)에 세워졌다. 이 같이 설치된 각 구역국은 그 하부에 세포조직을 만들었는데 북간도지역을 관할한 동만주구역국은 총 10개의 조직을 만들었다. 용정에 3개, 평강(平崗)에 1개, 동성용(東盛湧)에 1개, 나자구(羅子溝)에 1개, 훈춘에 1개, 왕청에 1개, 옹성랍자에 1개 국자가에 1개 등이었다.
동만주구역국의 간부로 선임된 송무영은 1928년 11월 조선공산당이 와해되자 조선공산당재건설운동을 추진하였다. 1929년 봄 송무영은 국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옛 동지들을 찾아다니며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적은 곧 일제에 포착되어 그 해 6월 체포되고 말았다. 종로경찰서에 유치되어 예심을 받던 송무영은 폐결핵에 걸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였다가 1930년 7월 22일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공산당원 보석출옥자 病死에 관한 건(1930. 7. 22) 思想에 關한 情報綴 第7冊
- 思想月報(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1933. 5) 제3권 제2호 17~20면
- 東亞日報(1929. 6. 18)
- 朝鮮日報(1930.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