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무열은 1920년대 중반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시베리아 방면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27년 11월에는 중국 땅 만주로 넘어가 항일독립운동을 목표로 한 독립군단을 조직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서 무기와 군자금이 필요할 것이므로 우선 군자금 모금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자신 스스로 ‘브로닝’식 7연발 권총을 구입해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추어지자 동지 1명과 함께 1928년 초 국내로 잠입해 경기도 고양군 삼송리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자신의 거사를 방해하는 오천만이라는 자를 처단하였다.
이 활동 후 김무열은 간도의 근거지로 귀대하던 중 회령의 재산가들에게서 또 다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간도의 독립군 근거지로 귀대한 후에도 용정촌(龍井村)을 무대로 다액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이 같은 활동으로 독립군단을 조직할 만한 자금이 모아지자 김무열은 동지 방용신(方鏞信)과 함께 대공단(大公團)이라는 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단원 모집에 나섰다. 그러나 김무열의 활발한 활동은 일제에게 포착되었고, 급기야 간도 파견 일경들에 체포되고 말았다.
서울로 압송된 김무열은 경성복심법원에서 총포화약취체령위반·주거침입·강도·살인미수·살인 등으로 1929년 5월 30일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官報(1929. 9. 20)
- 朝鮮日報(1929. 9. 15)
- 東亞日報(1928. 7. 26, 7. 28, 1929. 3. 3·3. 28·4. 18·5. 25·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