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 및 평양(平壤) 등 주요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4월에 들어서자 충청남도 청양군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3일 운곡면 미량리(美良里)에서 만세운동 시도가 있었지만 일본 헌병의 사전 탐지로 인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4월 5일 정산면(定山面) 정산 장터에서 7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4월 6일 운곡면 신대리(新垈里)에서 군중 500~600여 명이 일어났다. 이들은 마을의 높은 고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은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로써 군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만세운동은 비봉면으로 확장되었다. 4월 8일 500~600여 명의 군중이 운곡면과 비봉면의 산상으로 향했다. 군중은 산상에서 화톳불을 피우고 만세를 외쳤다.
이석후는 4월 6일과 4월 8일의 운곡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만세를 부르는 등 활동하였다가 체포되었다. 4월 23일 청양헌병분견소(靑陽憲兵分遣所)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70도(度)를 즉결처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3권 1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