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봉학은 강원도 춘천(春川)과 홍천(洪川)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봉학과 동료들은 1922년 10월 5일 강원도 춘천군 동면(東面)에 거주하는 김영주(金泳柱)의 집에서 12구경 엽총 1자루와 실탄 17발, 공포탄 3발을 획득하였고, 이후 각각 엽총과 화승총, 그리고 곤봉 등으로 무장하여 군자금 모집에 활용하였다.
먼저 1923년 6월 3일 홍천군(洪川郡) 두촌면(斗村面)의 경찰관 진유기량부(津留崎良夫) 포살을 기도하였다. 1924년 12월 28일에는 강원도 춘천군 북산면(北山面) 청평리(淸平里) 정규영(鄭奎永)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5년 4월 15일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自隱里) 하영도(河影圖)의 자택과 동년(同年) 9월 13일 홍천군 내촌면(乃村面) 광암리(廣岩里) 유익렬(柳益烈)에게 군자금 출자를 받았다.
전봉학과 동료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약 5~6년여 동안 강원도 춘천,홍천,인제(麟蹄) 등지에서 20차례 이상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전봉학은 소위 강도 등으로 징역 1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경성형무소에서 1932년 6월 25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8. 10. 2)
- 中外日報(1928. 10. 3, 10. 4)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8. 12. 12)
- 東亞日報(1927. 12. 2)
- 朝鮮日報(1928.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