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0년대 후반부터 전라남도(全羅南道) 장흥군(長興郡)에서 유재성(劉載星) 등의 지도 아래 최두용(崔斗用) 등과 함께 야학(夜學)을 개설하여 무산(無産) 청소년을 지도 계몽하기로 합의했다. 1931년 음력 10월 초순부터 음력 12월 하순까지 장흥군 남면(南面) 운주리(雲柱里)에 있는 임영득(任永得)의 집 객실에서 채정묵(蔡正黙) 등 10여 명의 학생들에게 ‘조선어 창가(唱歌)’, 작문 등을 가르쳤다.
1932년 12월 4일 일본 경찰이 장흥청년동맹(長興靑年同盟) 간부들을 검거할 때 함께 체포되었다. 1933년 2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2월 15일에 석방되었다.
1934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전라남도 경찰부(警察部) 고등과의 지휘로 강진·여수 등 9개 군에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 관련자 등 558명을 대대적으로 검거했던 이른바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 사건’에 연루되어 또 다시 체포되었다. 470여 일 동안 구금되어 고문 취조를 받았다. 1935년 12월 21일 병세(病勢)가 악화되어 면소(免訴) 처분되었다. 1938년 7월 14일 장흥에서 사망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1933. 2. 14).